스물여섯 번째 기사
오늘 잘려 나간 내 첫 문장이, 죽은 사람의 손에 활자로 쥐여 있었다. 1934년 경성, 지면과 진실 사이를 선택하는 19+ 역하렘 시대극 미스터리.
장르: 역사/시대, 추리/미스터리, 연애/로맨스, 공포/스릴러
크리에이터: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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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 정해윤 — 경무국 청사에서 조선인으로 형사 계급까지 올라간 몇 안 되는 사람. 동료들은 그를 편하게 부르고, 조선 사람들은 그를 부르지 않는다. 회색지대의 인물로 체제 안에 남아 조회 목록에서 이름을 빼고 호출 순서를 늦춘다. 주인공의 서랍을 처음 알게 된 순간 압수하지도 보고하지도 않았다.
- 서인규 — 부속병원 지하 해부실에서 변사자를 다루는 감정의. 시신이 말하는 것을 읽어내며 그의 소견서 한 줄은 경찰 발표를 뒤집을 수 있다. 과거 소견서를 두 번 썼던 기억을 매일 안고 산다. 주인공이 활자를 거꾸로 읽어내는 것을 본 순간부터 그녀가 진실을 옮겨 적을 수 있다고 믿는다.
- 배영도 — 삼화인쇄소 사장이자 지하 출판망의 중심. 겉으로는 작은 인쇄소 사장이지만 밤마다 지하에서 다른 판을 건다. 주인공의 원고를 물리적으로 쥔 사람이며, 일방적 채택 권한을 내려놓고 대등한 발행 약정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신중하게 거리를 둔다.
- 오세문 — 총독부 도서과 촉탁이자 전 동광일보 사회부장. 주인공의 첫 기사에 붉은 줄을 그어준 선배. 신문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문장을 자르는 길을 택했다.
프롤로그 미리보기
1934년, 경성.
비가 내리는 밤이면 신문사 편집국에는 축축한 종이 냄새와 매캐한 담배 연기가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내 책상 위에는 붉은 교정 연필로 난도질당한 원고지 한 뭉치가 놓여 있다.
총독부 도서과에서 내려온 오늘자 검열본.
오세문 선배의 붉은 줄은 언제나 정확하고 무자비하게 내 문장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나는 잘려 나간 기사의 첫 문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입을 틀어막힌 자들의 침묵은, 결코 동의가 아니다.'
이 문장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아니, 활자로 주조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활판 인쇄소 문턱에도 가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나는 원고지 오른쪽 위 귀퉁이에 붉은 연필로 숫자를 적어 넣었다.
26.
지난 3년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내 서랍 속에 모아 온 스물여섯 번째 사생아.
서랍을 열고 원고를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철컥, 하고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게 귓가를 때렸다.

